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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rout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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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x_Rose 2020. 9. 12. 18:07

대학 시절의 미술 평론 공부는 역사와 철학, 두 가지 카테고리로 구분 할 수 있다. 교수님들은 저마다 개성이 넘쳤고, 강의 시간엔 파격적인 말들이 쏟아져나왔다. 한 교수님은 여성에게 가해지는, 모성애에 대한 사회적이고 암묵적인 압박을 가차없이 비판하면서, 한 편으로는 아이를 '창조한다'는 것을 여성만이 독점하고 있음에 질투심을 느끼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박물관장이 친일파 후손이라며 울분을 토했지만, 학생들 입장에서 보기엔 딱히 한국에 대한 애정도 크지 않고, '한국의 모든 유산은 중국으로부터 온 것이다.'라는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에 여념없었던, 주로 역사를 가르치셨던 교수님도 있었다.

 

단순히 학문적 분류가 아닌 모든 커리큘럼을 아우르는 키워드는 뭔가-라고 생각해보면, 그건 '인간', 정확하게는 '인간성'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이었다.

 

 

어느 책에서, '머리가 좋다는 것은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땐 이해 못했지만.. 세상에 머리가 좋은 사람들은 (생각보다) 정말 많다는 것과, 그 '머리 좋음'에 대한 대략적 규정은 할 수 있을지라도, 불확실하고 극도로 다양한 사회속에서 절대적으로 정의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 두 가지가 작용해서 그런 말이 나올 수 있었지 않나 싶다.

 

 

평론이었지만, 어쨌든 그림은 계속 그리고 있었기에 (분위기가 그런것도 있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테스트했다. 억지로 자신의 기분을 다운시켰다가 업 시켰다가, 나 자신을 갖고 온갖 실험을 해보면서 어떤 그림이 나오는지,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지, 어떤 것을 표현하고 싶은지... 나 자체가 페트리 접시였기 때문에, 세상에 대한 불확실성도 페트리 접시위에 떨어진 세균 하나. 뭐 그 정도로 취급하며 비교적 안온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문제는 공대쪽 내용을 공부하면서 시작되었다. 자신을 갖고 온갖 실험을 할 수 있었던 미대 시절과는 달리, 공대는 계속해서 '틀'을 요구했다. 스스로를 갖고 테스트를 하는게 아니라, 수학과 확률 공식들을 놓고 그 블록들을 끼워맞추는 레고 놀이였다.

 

공부를 시작하고 1년쯤 지나자, 사고가 공대식으로 많이 굳어진게 느껴졌다.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했고, 

생각의 아키텍쳐가 딱딱해졌다.

 

그 전의 아키텍쳐가 언제든 처음부터 끝까지 싹 다 부숴버리고 바닥에서부터 세울 수 있는, 극도로 유연한 것이었다면, 이후의 아키텍쳐는 기존의 뼈대가 너무 견고하여 절대로 부술 수 없고, 대신 군데군데 보수 정도만 할 수 있다.

 

 

생각의 틀 자체가 완전히 뒤바뀜을 경험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지만, 고통스러웠다.

 

 

지식은 늘어났다.

 

하지만 인간성은 어떠한가?

 

'인간'이라는 한계에 부딪히고 또 부딪히고, '이겨낼 수 있어!!!'라고 외쳐보지만 실상은 인간 종족의 한계에서, 1나노미터 정도의 발전도 죽을 힘을 다해야 할 수 있을까 말까-하다는 걸 깨닫는 나날의 연속이었고..

 

'인간'을 바라보기보다 '잘남'을 계속 바라보는 쪽으로, 관점이 굳어져가는게 느껴졌다.

 

 

예술은 인간을 끄집어내고, 인간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정의는 필요없다. 사람이 겪어온 경험과 고뇌의 시간만큼, 이해하는 깊이도 다르고 강제하는 부분도 없기에. 자신의 깊이에 맞는 작품을 찾아 그윽하게 즐기면 그만이다.

 

 

 

공학은.. 음, 예술이 직관으로 알 수 있는 것들에 대해, '분석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발전한 학문같다.

 

'왜'라고 끊임없이 질문하며, 굳이 아프고 힘든 길을 파고 드는 학문 같달까.

 

예술의 관점에서 보기에는 한심한데, 정작 실질적으로 인간에게 빵을 만들어주고, 약을 주는 것은 이 '굳이' 아프고 힘든 길을 파고들어간 사람들이 내놓은 결과물들이다.

 

 

 

양쪽 다 인간에게 '필수적인' 영양소같다.

 

실질적인 것에 치우치면, 정신이 메마르고

정신에만 치우치면, 몸이 고달프고

 

 

 

모든 정신을 날려버리며, '인간'을 느낄 수 있었던 글과 시들을 읽고 나서...

 

너무 기쁜 마음에 주절거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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